남양성모성지

남양성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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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남양 성모성지

하늘에서 본 남양성모성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남양 성모성지 묵주기도의 길 모습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교회가 창설된 이래로 100여 년 동안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를 비롯한 많은 박해가 있었다. 특히, 병인년 대박해 때에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가 났는데, 당시 교우의 총 수가 2만 3천 여명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얼마나 잔학한 박해였는지를 알 수 있다. 바로 이 병인년 대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순교한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남양성모성지이다. 선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순교지를 1991년 10월 7일,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성모님께 봉헌하고 성모님께 기도하는 성모성지로 선포하게 되는데, 이는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사랑과 신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신자들에게 매우 뜻깊고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인 학자들의 자발적인 서학 연구 결과로 설립된 조선 교회는 그 시초부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무염시태’, 즉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조선교구의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 범 주교의 청원에 의해 1847년 8월 22일에 무염시태의 성모 마리아를 성 요셉과 함께 주보성인으로 모시게 된다.

imgsky3 이 밖에도 조선교회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조선교회에 무염시태 성모 신심 운동을 크게 일으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블뤼 안 주교는 1846년 11월 2일, 공주 수리치골에 ‘무염시태 성모성심회(聖母聖心會)’를 설립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조선교회를 위한 선교사들의 신학 전망은, 신자들이 무염시태이신 성모 마리아처럼 깨끗이 살고, 그리스도 구원의 협력자로 살아서 승리한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노력은 신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신자들은 누구나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었고, 모진 박해의 어려움도 성모 마리아께 의탁하며 이겨 나갈 수 있었다. 당시의 신자들은 마리아의 전구로 하느님께서 조선교회를 혹독한 박해에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애원하였다. 사실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성모님을 사랑하고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순교자들의 입에서는 죽는 순간까지도 "예수! 마리아!" 라는 기도가 떠나지 않았다.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이도기 바오로와 방 프란치스코는 사형 직전 "성모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순교하였으며, 순교자 김광옥 안드레아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동안 큰소리로 묵주의 기도를 바쳤는데, 이를 본 구경꾼들은 한결같이 "참 이상한 일이로군. 죽는 것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형장으로 가는 사람은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보면 당시의 순교자들이 박해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묵주의 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의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순교자들의 유물을 보더라도 그분들이 손에 마지막까지 쥐고 있었던 것은 오직 묵주 하나였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성모신심을 신앙의 유산으로 이어받은 우리나라 신자들이 언제든지 성모님의 이름으로 찾아와 기도할 수 있도록 특별히 봉헌된 곳이 바로 남양성모성지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남양성모성지는 ‘로사리오의 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만큼 묵주기도는 남양성모성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도일 뿐 아니라, 남양성모성지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기쁘게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신앙의 선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순교했던 자리에서 그 후손들인 우리가 같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묵주의 기도를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일인가?

남양성모성지에는 돌 묵주알이 파랗게 드리워진 로사리오 광장의 둘레를 수놓고, 이어 야산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면서 총 길이 약 1km 정도의 20단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어 있다. 남양성모성지의 돌 묵주알은 화강암 재질로 만들어진 지름 0.7m 정도의 구(球)로, 이것이 어른 허리 높이에 맞춰 약 4.5m 간격으로 놓여있어 성지를 순례하는 신자들은 그늘을 드리워주는 가로수와 아름다운 야생화들 사이에서 산책하듯 이 묵주알을 한 알 한 알 짚어가며 묵주의 기도를 바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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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묵주기도가 길고 지루한 기도라고 생각되어 5단 바치기도 힘들어 하던 사람도 성지에서 철따라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갖가지 야생화와 나무들로 가꾸어진 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치다 보면 20단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계절과 시간, 날씨에 관계없이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를 부르며 성모님께 매달리는 수많은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남양성모성지의 돌 묵주알은 신자들의 간절한 마음과 감사기도의 손길들로 벌써부터 반들반들 윤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따스함을 느끼며, 돌 묵주알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릴 때마다 성모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는 듯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곳, 성모님을 그리워하는 신자들의 발길로 다져진 곳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항공촬영을 통해 성지의 묵주기도 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서 정말 놀랍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로사리오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성지의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 길 모습이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에 나와있는 자비로우신 성모님의 모습과 꼭 같은 모습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그러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하고 도면을 만들어 작업한 것처럼 너무나 똑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콘
자비의 성모 이콘(왼쪽)과 항공촬영한 남양성모성지의 묵주기도 길 모습(오른쪽)

성지의 광장과 묵주기도의 길은 그동안 어떠한 설계도면도 없이, 여러 차례에 걸쳐(91년 3~9월, 93년 3월, 97년 2~4월)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상황에 맞게 조금씩 넓히고 다듬은 것이다. 성지를 개발하는데 있어 다른 일들도 그랬지만, 광장을 넓히는 데는 특히 더 많은 어려움이 따랐고 그때마다 큰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현행법상 ‘성지’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고, 종교부지라는 것은 특정 건물이 세워져 있을 경우에 한하므로 성지를 넓히는데 허가를 얻고 공사를 시작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땅 주인과의 마찰도 언제나 큰 장애물이었다.

첫 번째 광장 넓히기 공사를 시작할 때도 땅 주인이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일단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땅을 파 놓으니 땅 주인이 찾아와 당장 원상복귀를 해 놓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성체 앞에서 양팔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것 뿐이었다. 그 기도의 힘이었는지 주인과 다시 협상하여 결국 적당한 가격에 땅을 매입하였고, 광장을 넓힌 후에는 나무 십자가로 만들어져 있던 묵주기도 길에 돌 묵주알을 조각하여 놓을 수 있었다.

세 번째로 광장 넓히기 공사를 할 때도 역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발되어 얼마간 일이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도 받고, 검찰에 불려나가 벌금도 내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결국 두 달여 만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또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지금도 묵주기도 길 환희의 신비 4단 근처에 그대로 남아 있는 무덤이다. 광장을 넓히고 묵주기도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땅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10여년에 걸쳐 몇 차례나 땅 주인을 만나 매입을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만 당했다.

할 수 없이 97년 마지막으로 광장넓히기 공사를 할 때 그 땅을 그대로 둔 채 묵주기도 길을 만들다 보니, 묵주기도 길이 가파르게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운데 남아있는 무덤을 가리기 위해 광장 한 켠에 섬처럼 덩그렇게 남아있는 그 봉우리 주변에는 빙 둘러 나무를 심어 놓았다. 솔직히, 아무리 설득해도 땅을 팔지 않겠다는 무덤 주인 때문에 처음에는 화도 나고, 나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만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러한 마음들이 누그러지고 ‘광장을 넓히는 대신 묵주기도 길을 연장하면 어떨까?’ 라는 새로운 구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뜻밖에도 그 봉우리는 성지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만일 그때 봉우리를 모두 파서 평평하게 만들었다면 물론 광장은 더 넓어졌겠지만, 새로운 묵주기도 길로 나아가는 진입로가 없어 묵주기도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고 또 실제로 묵주기도 길을 연장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남양 성모님께서 모셔진 자리도 지금처럼 아늑한 느낌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덤을 가리기 위해 무덤 주변을 빙 둘러 나무를 심어 가꾼 그 부분이 자비의 성모 이콘에서 성모님께 살며시 기대고 있는 예수님의 머리처럼 보이는 것은 또 얼마나 신기한가?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의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는 요셉성인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셉 성인은 성모님의 순결한 배필이시며 예수님의 양부로서 두 분의 충실한 보호자이셨기에 요셉 성인께 기도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지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요셉 성인상을 성지에 모셔놓고 계속 기도해 왔는데,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신기하게도 성모님의 가슴 한복판에 요셉 성인상이 모셔져 있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발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시련과 장애물들 또한 모두 성모님께서 계획하시고 마련하신 섭리였던 모양이다. 성모님께서는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당신의 모습을 이곳 남양성모성지의 묵주기도 길에 그려넣어, 당신께서 ‘여기’, ‘우리와 늘 함께 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이곳에서 더 많은 묵주의 기도가 바쳐질 수 있도록 묵주기도 길을 연장하게 하셨던 것 같다.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그를 향해 다정하게 고개를 숙이신 어머니 성모님과 자신의 볼을 어머니의 볼에 맞대며 어머니의 목을 손으로 감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의 깊은 사랑과 내면적 결합이 잘 표현되어 있는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의 모습을 남양성모성지에 새겨주신 것은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양의 성모님 또한 아름답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자비로우신 어머니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시며, 남양 성모상의 예수님도 성모님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계신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어 블라디미르의 성모 (자비의 성모) 이콘에서와 같이 남양 성모상의 모습에서도 예수님과 성모님 두 분 사이의 깊은 사랑과 친밀감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imgsky6 많은 사람들이 성지에 오면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묵주알을 어루만지며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여’ 라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녀들과 좀 더 내면적으로 깊게 결합하고자 하시는 성모님께서 남양성모성지에 이렇게 현존하여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의 슬픔과 고통, 근심과 걱정을 성모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가나의 혼인 잔치집이며 주님과 성모님이 계신 여기 남양에 찾아오십시오. 바로 그 때문에 순교자들이 피흘린 거룩한 이 땅을 오늘 성모님께 바치며 성모성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남양성지를 성모님께 봉헌해 주시며 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덧 봉헌 15주년을 맞이하는 남양성모성지에는 전국 곳곳에서 연일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와 자신에게 떨어진 포도주를 얻어가고 있다.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로 가꾸어 오던 남양성지가 이렇게 은혜로운 장소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도의 힘이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성지 개발을 시작하면서 나는 성체 앞에 꿇어앉아 "예수님, 이제 성모님을 위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라고 오랫동안 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24시간 계속해서 성모님이 원하시는 지향으로 기도를 바쳐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힘으론 불가능하지만, 묵주기도를 드리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생각한 것이 바로 ‘기도의 마라톤’, ‘24시간 묵주의 기도 고리 운동’이다. 단순히 2,000원 3,000원으로 성지를 돕는 후원회원의 모집이 아니라 하루 온 종일 묵주의 기도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묵주의 기도 고리 회원을 모집하자.

하루 24시간 중 내가 묵주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시간, 15분이나 20분을 정해 그 시간 동안 / 1. 조국의 평화 / 2. 민족의 화해 / 3. 죄인들의 회개 / 4. 남양성모성지 성역화 사업을 위해, 그리고 / 5. 묵주기도 고리 운동 회원 서로서로를 위해 / 5가지 기도 지향을 가지고 매일매일 내가 정한 시간에 묵주의 기도를 바치면, 그 다음 시간에는 다른 사람이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하게 되면서 남양성모성지를 위한 기도가 하루 종일 성모님께 봉헌되고 기도 운동에 참여하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 또한 하루 종일 이어지는 것이므로 좋은 기도운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도 고리 운동에 참여하면서 2,000원, 3,000원씩 후원금도 보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도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없는 분들은 묵주의 기도만이라도 꾸준히 바쳐달라고 말씀드렸고, “TV를 보다가 혹은 길을 지나가다가도 '남양 우유', '남양 알로에' 광고나 '남양'이라는 말만 나오면 남양 성모님을 생각하며 성모송 한번이라도 바쳐 주십시오.” 라고 부탁드리며 성지개발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묵주의 기도 고리운동과 함께 일해 왔다.

나는, ‘남양성지를 보는 것은 묵주기도의 힘을 보는 것이다. 기도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은혜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성지 개발에 어려움도 많았고, 나 자신도 정말 가능할까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모두 가능했다. 그 때마다 묵주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묵주기도와 함께 은혜를 받는 또 하나의 열쇠가 있었다면 그것은 성체조배이다. 나는 남양이 성모성지가 되자면 무엇보다 바로 여기서 성체께 대한 흠숭이 이뤄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체 조배실이 마련되어 끊임없는 성체조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지개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성체조배실을 짓고 성체를 모셨으며 성지순례 일정에도 성체조배를 드리도록 해 놓았다.

묵주기도와 성체조배 이것이 남양성모성지의 변화를 가져온 두 힘의 원천이다. 나는 지금까지 성지를 개발하고, 또 한 명의 사제로 살아오면서 성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고 의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성모님께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섭리하시고 해결해 주시며, 결국 남양성모성지가 이렇게 아름답고 은혜로운 곳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을 것이라 믿으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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